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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소식 보도자료] [이주여성이야기] 반달 아래① 한국에서 설을 맞이하며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시 : 2022-02-04 22: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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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양 인하대학교 다문화융합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인천투데이│눈송이가 흩날리는 고요한 겨울밤, 낮에 눈밭에 뛰어놀아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은 깊은 잠에 빠졌다. 조금 전 중국 고향 가족과 화상통화를 했다. 중국 정부는 설 연휴 동안 인구 이동에 따른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별 격리 정책을 다르게 실행하고 있다.

그래서 광둥성 둥관(東莞)시에 있는 큰 동생은 회사에 남기로 했다. 나 또한 3년 전 고향 허난성 난양(南陽)을 방문한 뒤 올해도 갈 수 없게 됐다. 다행히 베이징에서 근무하는 막내는 자가 격리가 가능해 조만간 집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한다. 3남매 중 올해 설 명절은 막내 한 명만 부모님과 같이 지낼 수 있게 됐다.

고향인 중국에서도 한국의 설 명절에 해당하는 춘절을 맞이하기 위해 집안 대청소, 부엌 식기 소독, 설 선물 준비, 음식재료 마련 등을 명절 보름 전부터 시작한다. 친가와 외가 친인척이 다 모일 때는 10여 가구에 40명이 넘는 대모임이 된다.

설날 빠지면 안 되는 대련(對聯) 붓글씨 쓰기는 해마다 막내가 직접 작성했다. 빨간 종이바탕에 검은색이나 금색 먹물로 상서로운 말이나 시를 써서 새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한다. 어릴 적 명절에 가장 좋아했던 폭주 놀이는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지면서 언제부터인지 사라졌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튀김을 주로 한 고향 설음식 준비는 아버지가 다 하셨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은 후 이 일도 막내 남동생이 맡고 있다. 기억 속의 막내는 늘 중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우리 집에서 가장 든든한 사람이 됐다.

내가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2004년의 일이다. 그해 봄 어느 날, 나는 시안(西安)의 한 대학교에서 훗날 남편이 된 그를 만났다. 그때 그는 내게 ‘좋아하는 이가 생겼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바로 나였다.

그렇게 길고 짧은 만남 끝에, 2년 뒤 그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고향을 떠났다.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조마조마했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내 옆에 그가 있기 때문이다.

바닷물은 집 앞 포구를 지나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들었다. 지난주 무엇을 했는지도 가물가물한 내가 16년 전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하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바닷물처럼 머릿속에 휘돌고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16년 전 한국 땅에 발을 처음 내디뎠을 때, 할 수 있는 한국말은 ‘안녕하세요.’ 단 한 마디뿐이었다. 시댁 식구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데, 절을 하는 방식도 어색했다. 한동안 위층 안방에서 컴퓨터를 붙들고 지냈다. 의사소통이 안 돼 대화가 두려워 거의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러 가신 시아버님께 전화해서 식사하라고 했는데 ‘아빠, 빨리 와, 밥 먹어’라고 반말로 전했다.

2006년 한국에 와서 한 달 후 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한 시댁 식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고향 생각에 눈물이 봇물처럼 터졌다. 생애 처음으로 고향을 등지고 객지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는 말의 뜻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외우기만 했던 이태백(李太白)의 ‘정야사(靜夜思)’가 뜻밖의 시간과 공간에 있는 내 마음에 와 닿았고, 그와 시공간을 초월한 공감을 갖게 됐다.

床前明月光(상전명월광),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舉頭望明月(거두망명월),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밝은 달빛이 침상 머리를 비추니, 마치 하얀 서리와도 같다.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고, 머리 숙여 고향을 그리워한다.

오늘의 나 또한 희미하게 보이는 반달을 바라보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각에 잠겼다.

첫 번째 명절을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고 시댁 어른을 따라 낯선 길을 나섰다. 도착한 곳은 한글을 배우지 못한 어른들에게 한글을 알려주는 인천의 한 복지관 한글 교실이었다.

교실 한 편에 있는 젊은 여성 한 명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왔다고 자기소개를 한 것 같았다. 그때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한국어 공부는 어른들과 함께했다. 첫 교재도 손에 쥐었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 책 이었다. ‘곰이 엉금엉금 나무에 올라갔습니다.’라는 문장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받아쓰기에서 항상 100점을 받아 칭찬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뜻을 전혀 몰라 무척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게 1년을 한글을 공부하느라 분주하게 보냈다. 배운 내용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안고 25살 생일을 맞이했다.

지난날 생각에 손에 든 찻잔이 어느새 비었다. 생각을 잠시 접고 뒤돌아보니 깊은 잠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예뻐 보였다. 이렇게 아이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언제였던지 한국에서도 시간은 빠르게 지난다.

*이춘양 박사는 2006년에 한국에 입국한 중국 한족 출신 40세 이주여성이다.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국제학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인하대학교 다문화교육학과 교육학박사를 졸업했다. 현재 인하대학교 다문화융합연구소 초빙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단법인 소비자교육중앙회 인천시지부 결혼이민자 소비자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경기도 다문화 크리에이터(타향지음), 시흥다어울림아동복지센터 등에서 중국어 통역과 번역을 맡고 있다.

출처 : 인천투데이(http://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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